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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핵소고지 포스터

1. 영화소개

2017년 개봉한 이영화는 실제인물인 데이몬드 도스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비폭력 주의자인 데이몬드가 모든 고난과 역경을 뚫고 목숨이 걸린 전쟁에서 동료 75명을 구해낸 이야기입니다. 미국, 영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 영화 줄거리

어린 시절 동생 헤럴드와 싸우다 바닥에 있는 돌로 동생을 때려 쓰러지게 한 주인공 데이몬드는 쓰러져 의식불명이 된 동생을 보고 충격을 받고 벽에 걸린 십계명을 보며 절대 누군가를 헤치지 않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12년 후 청년이 된 데이몬드는 어느 날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친 친구를 지혈하며 같이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의사에게 자신 덕분에 친구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도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다 간호사 도로시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작업을 걸고 데이트를 하며 도로시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마을청년들이 나라를 위해 입대를 결정하게 되었고 그 청년들 중에는 동생인 헤럴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평소 의학에 관심이 있던 데이몬드 또한 위생병으로 입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념 때문에 사람을 헤칠 수는 없지만 위생병을 한다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입대하여 모든 훈련에서 좋은 성적으로 마친 데이몬드는 필수 훈련 중 하나인 총기 훈련에서 신념과 신앙적인 일로 총을 들 수 없어 훈련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상관들에게 불려 가도 자신의 종교적인 이유로 총을 들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상관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같은 소대 전우들 앞에서 데이몬드를 조롱했습니다. 또한 데이몬드의 정신을 고치겠다는 이유로 데이몬드의 잘못을 억지로 만들어내 소대 전체를 벌주기도 했고, 데이몬드 때문에 자신들이 힘들다고 느낀 전우들은 밤이 되면 몰래 구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신념을 지키면서 총을 잡지 않았던 데이몬드는 조금씩 소대원들과 친밀해지고 그들도 데이몬드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가온 휴가날 데이몬드는 휴가를 이용해 도로시와 결혼식을 올릴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소총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가를 나가지 못하고 군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군재판까지 받게 되었는데 그때 데이몬드의 아버지이자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톰이 나타나고 재판관에게 한통의 서신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서신은 톰의 옛 상관인 현재 군사령관에게서 받은 데이몬드의 비무장 권리 보호서였습니다. 그 서신 덕분에 데이몬드는 모든 훈련을 받고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들의 파병지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전쟁의 승패가 달려있는 요충지 핵소고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데이몬드가 속해있는 미군은 핵소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전투를 시작하고 총알이 빗발치며 사망자가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계속되는 전투 중 조금씩 미군이 밀고 나가며 승리에 가까워질 때 일본 총공세가 시작되면서 많은 수의 일본군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밀리기 시작한 미군은 해군에게 포격 요청을 하며 후퇴를 했습니다. 포격이 시작되고 미군은 전부 고지아래 해변으로 후퇴를 했지만 데이몬드는 남아있는 부상자를 두고 갈 수 없어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미군이 후퇴한 후 일본군들이 있는 핵소고지에서 데이몬드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가고 하루밤동안 75명의 부상자를 고지아래 해변으로 혼자 옮겨 내고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데이몬드도 고지 아래로 안전하네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해변으로 내려온 데이몬드에게 모든 동료들은 존경과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감사인사도 전했습니다. 그 이후 한 대령이 다가와 데이몬드에게 다음 전투에도 함께 해주기를 부탁했고 데이몬드는 고민 끝에 다음전투에도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데이몬드와 함께한 모든 미군들은 자신감이 생겨 더욱더 전투적으로 밀고 나아갔고 결국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일본군 잔병들이 수류탄으로 자살을 하면서 미군에게 피해를 줄생각으로 시도를 하지만 데이몬드의 활약으로 그 또한 미수에 그치며 부상을 입은 데이몬드는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고지아래로 내려가면서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3. 역사적 배경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오키나와전쟁이 배경입니다. 오키나와 전쟁은 일본영토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한 전쟁이며 미군 전투 사망자 2만 7천여 명, 일본 사망자 7만 4천여 명 정도로 추측되고 민간인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20만 명 이상의  많은 사상자가 나왔던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83일 동안 이 전쟁은 태평양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미국이 일본 본토를 침략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일본침략을 위한 미군기지를 세우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오키나와였습니다. 

전쟁 당시 오키나와의 일본군은 10만여 명이었지만 대부분은 전쟁경험이 없을뿐더러 7만여 명 정도는 노무자였고 오키나와 주민으로 이뤄진 징병부대가 2만 4천여 명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미군의 병력은 54만 8천여 명이었고 첫날 오키나와 상륙병력만 18만 2천여 명으로 일본군과의 전력차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일본 사령관 우시지마 미쓰루는 전력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판단해 해변을 포기하고 섬내부의 험난한 요새 지대에서 버티는 지구전 전술을 이용해 미군에게 최대한 피해를 많이 줄 수 있는 전술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왕궁이 있는 슈리성을 중심으로 방어구역을 구축한 일본은 지하땅굴을 통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방어선에서 미군을 상대하며 미군에게 밀릴 때는 후퇴하여 다음 방어선에서 미군을 저지하며 최대한 미군의 진격을 늦추며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군은 어린아이에게 약한 미군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철혈근황대라는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의용대를 만들어 수류탄을 쥐어주고 총알받이로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방어 전술들이 잘 통하자 일본은 모든 병력을 이용한 총공세하여 미군과 충돌하지만 이미 총공세를 예상하고 있고 전력차이도 압도적인 미군에게 밀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미군이 승리한 이 전쟁은 많은 사상자를 낸 탓에 미군이 일본 상륙전쟁이 아닌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마음먹는데 큰 결심을 하게 한 전투이기도 했습니다.

 

4. 총평

신앙적으로의 신념을 이렇게까지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키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데이몬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로 주변에 잔인한 장면을 봐도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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